
2004년 8월 29일 저녁, 아테네 올림픽 남자 마라톤 결승선을 앞두고 세계 육상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이 터졌다. 브라질의 반데를레이 지마는 35km 지점에서 압도적인 선두로 달리고 있었고, 결승선까지는 7km가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순간 관중석에서 튀어나온 남자 하나가 지마를 덮쳐 도로 밖으로 끌고 갔다. 캐스터석에서 그 장면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숨이 멎는 몇 초였을 것이다. 결과부터 말하면 지마는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완주했고, 순위는 동메달로 바뀌었지만, 이 글에서 되짚을 건 순위표 한 줄이 아니라 그 10초가 만들어진 순서다. 출발선의 저녁 6시부터, 12년 뒤 리우데자네이루의 성화대까지 시간 순서로 다시 밟아본다.
저녁 6시, 마라톤 마을에서 출발한 42.195km
이 대회의 출발점부터가 상징적이었다. 원래 근대 마라톤은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때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 시내까지 뛴 전령의 전설에서 이름을 따왔고, 2004년 아테네는 그 뿌리를 그대로 코스에 심었다. 실제 마라톤 마을에서 출발해 아테네 시내를 관통한 뒤, 1896년 대회의 무대였던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에서 결승선을 그었다. 늦여름 오후의 더위를 피하려고 출발 시각은 저녁 6시로 잡혔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 긴 그림자를 밟으며 42.195km가 시작된 것이다.
1. 오후 6시 — 늦더위를 피해 저녁에 뛴 마라톤
출발 총성이 울리자 선수단은 평소보다 신중하게 페이스를 잡았다. 저녁 경기라고 해도 아테네의 늦여름 열기는 가시지 않은 시간대였고, 초반부터 무리하게 치고 나가는 선수는 드물었다. 케냐·에티오피아의 강호들과 유럽 마라토너들이 뒤섞인 선두 그룹은 도심을 빠져나오는 동안 대열을 유지하며 페이스를 재는 데 집중했다.
중계석에서 보면 이 구간은 가장 지루해 보이는 동시에 가장 중요한 구간이다. 42.195km 전체 판을 좌우하는 건 결국 이 초반 몇 km에서 누가 무리하지 않고 힘을 아꼈느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선두권에 끝까지 남은 선수 대부분은 이 구간에서 튀지 않았던 이들이었다.
2. 20km — 지마, 스퍼트로 선두에 서다
레이스가 절반 지점에 가까워지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지마가 20km 지점에서 치고 나가며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도로 경기 특성상 관중은 도로 양옆까지 바짝 붙어 있었고, 지마는 그 환호를 등에 업은 채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다. 이 시점만 놓고 보면 그는 이미 금메달을 향해 가장 유리한 자리에 서 있었다.
마라톤에서 레이스 중반에 단독 선두로 나서는 건 도박에 가깝다. 뒤따르는 무리의 페이스를 흔들어 주도권을 쥘 수 있지만, 반대로 남은 20km를 혼자 버텨야 한다는 부담도 그만큼 커진다. 지마는 그 도박을 택했고, 이후 15km 동안은 그 선택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3. 25km — 뒤쫓는 무리, 이탈리아의 발디니가 속도를 올리다
25km 지점을 지나며 추격조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이탈리아의 스테파노 발디니가 남은 선수들을 이끌고 페이스를 올렸고, 미국의 메브 케플레지기도 그 무리 안에서 자리를 지켰다. 지마와의 격차는 여전히 벌어져 있었지만, 발디니 쪽 페이스가 살아나면서 격차는 조금씩 좁혀지는 중이었다. 아직은 누구도 지마의 우승을 의심하지 않던 구간이다.
캐스터 입장에서 이 구간의 중계 멘트는 대개 “지마의 리드가 안정적으로 보인다”였을 것이다. 실제로 격차는 여전히 넉넉했고, 추격조가 좁히는 속도도 완만했다. 아무도 이 평온한 흐름이 10km도 채 지나지 않아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바뀔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4. 35km — 관중석에서 튀어나온 남자
결승선을 7km 남긴 35km 지점, 선두 지마와 2위 그룹의 격차는 약 25초.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일랜드 출신의 전직 사제 코넬리우스 “닐” 호란이 관중 통제선을 넘어 도로로 뛰어들었고, 그대로 지마를 덮쳐 인도 쪽으로 끌고 갔다. 현장 중계 화면에는 지마가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도로 밖으로 밀려나는 모습이 고스란히 잡혔다. 다행히 근처에 있던 그리스 관중 폴리비오스 코시바스가 즉시 달려들어 호란을 떼어냈고, 지마는 몇 초 만에 다시 레이스로 돌아왔다.
실제로 멈춰 있던 시간 자체는 길지 않았다. 그러나 완전히 무너졌던 스텝을 되찾고 호흡을 다시 잡는 데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들었다. 선두와 추격조의 격차 25초 가운데 최대 10초가 이 몇 초 사이에 사라졌다는 게 이후 분석의 대체적인 결론이다. 마라톤에서 10초는 별것 아닌 듯 보여도, 35km를 넘긴 다리로 다시 리듬을 만드는 대가는 숫자보다 훨씬 컸다.
더 냉정하게 보면, 이 사고가 무서운 건 지마 개인의 불운을 넘어서는 지점이다. 도로 마라톤은 코스 통제가 완벽할 수 없는 종목이고, 관중과 선수 사이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종목이기도 하다. 이날 이후 대형 마라톤 대회들이 통제선과 경호 인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된 것도 이 장면이 남긴 또 다른 유산이다.
5. 결승선 — 2시간 12분 11초, 팔을 벌린 채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에 들어선 지마의 순위는 결국 3위로 바뀌어 있었다. 발디니가 2시간 10분 55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케플레지기가 2시간 11분 29초로 은메달, 지마는 2시간 12분 11초로 동메달을 받았다. 발디니와의 격차는 1분 16초, 케플레지기와는 42초 차이였다. 공식 경기 결과에 남은 숫자는 이렇게 담백하지만, 결승선을 통과하던 지마의 표정은 숫자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화를 내는 대신 양팔을 활짝 벌려 비행기 날갯짓을 흉내 내며 트랙을 돌았다. 관중은 순위와 상관없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공식 기록지에는 지마의 이름 옆에 동메달이라는 한 단어만 남아 있다. 하지만 그날 현장에서 경기를 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는 이미 순위와 상관없는 선수였다. 결과를 알고 지금 다시 보면, 그 표정이야말로 이 레이스에서 가장 정확한 최종 기록이었는지도 모른다.
6. 그해 12월 7일 — 리우에서 온 메달 하나 더
이야기는 시상대에서 끝나지 않았다. 같은 해 12월 7일, 국제올림픽위원회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마에게 쿠베르탱 메달을 수여했다. 근대 올림픽 창시자의 이름을 딴 이 메달은 순위와 무관하게 극도로 드물게, 스포츠맨십 그 자체를 기린 선수에게만 주어진다. IOC가 남긴 수여 소식에는 방해받은 선두를 원망 없이 완주로 마무리한 태도가 메달의 이유로 적혀 있다. 지마는 그해 브라질에서 온라인 투표로 뽑힌 첫 올해의 선수로도 선정됐다.
메달 두 개를 받은 선수는 흔하지만, 동메달과 쿠베르탱 메달을 같은 해에 함께 받은 선수는 손에 꼽는다. 결승선 앞 10초를 빼앗긴 사람이 그해 가장 많이 회자된 선수가 됐다는 사실 자체가, 이 종목이 순위 이상의 무언가로 기억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셈이다.
7. 2016년 8월 5일 — 12년 만에, 이번엔 성화를 들고
마지막 장면은 12년을 건너뛴다. 2016년 8월 5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회식의 마지막 성화 점화자로 등장한 사람은 다름 아닌 지마였다. 세계육상연맹이 전한 그날의 기록을 보면, 2004년 아테네에서 좌절할 뻔했던 마라토너가 조국에서 열린 대회의 성화대에 불을 붙이는 장면으로 12년의 시차가 완전히 다른 결말을 맞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결승선에서 팔을 벌리던 사람이, 이번에는 성화를 들어 올린 것이다.
지금 이 장면을 다시 돌려 보면 앞뒤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아테네에서 빼앗긴 10초와 리우에서 들어 올린 성화는, 결과를 알고 나서 되짚을 때만 보이는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당시 캐스터석에서는 누구도 이 결말까지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 결승선은 어디일까
지마의 35km는 지금도 마라톤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 종목인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인용된다. 요즘은 메이저 마라톤 대회도 국제육상 실시간 경기 중계로 실시간 확인이 가능해진 시대라, 결승선 직전 몇 초가 순위를 뒤집는 장면을 그 자리에서 목격하는 일도 더는 드물지 않다. 다음에 마라톤 중계를 볼 때는 20km, 35km 같은 구간 표시가 나올 때마다 이 이야기를 한 번쯤 떠올려도 좋겠다.
결승선을 8km 앞두고 완주 자체가 흔들렸던 그 순간은, 지금도 “끝까지 달려야 진짜 기록”이라는 말을 증명하는 장면으로 소환된다. 다음 결승선에서는 또 어떤 10초가 기다리고 있을지, 그건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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