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30일 저녁, 런던 엑셀 전시장의 펜싱 피스트 위에서 전광판 시계가 0:01에 멈춰 있었습니다. 여자 에페 개인전 준결승, 한국의 신아람 선수와 독일의 브리타 하이데만 선수는 5대 5로 연장전 마지막 순간을 맞았습니다. 1초가 남았는데 그 1초가 좀처럼 흘러가지 않았고, 결국 이 장면은 올림픽 펜싱 역사에서 가장 오래 회자되는 판정 논란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날 중계석에서 벌어진 초 단위의 흐름을, 결과를 아는 지금의 눈으로 다시 짚어 보려 합니다.
먼저 이 경기까지 오는 길입니다. 에페는 몸통과 팔다리 어디든 먼저 찌르면 점수가 나는 종목이고, 양쪽이 동시에 찌르면 둘 다 득점합니다. 정규 3라운드가 끝났을 때 스코어는 5대 5였습니다. 연장은 1분을 싸우고 그 안에 득점이 없으면 사전에 추첨으로 정한 우선권 선수가 이깁니다. 신아람 선수가 우선권을 쥔 상태였습니다. 그러니까 1분 동안 버티기만 해도 결승 진출이었다는 뜻입니다.
1. 남은 1초, 세 번의 공격
연장 종료가 가까워지자 시계는 1초를 가리켰습니다. 하이데만 선수가 먼저 공격에 들어갔고 신아람 선수가 막았습니다. 심판이 경기를 멈추면 시계도 멈추고, 재개 신호와 함께 다시 흘러야 합니다. 그런데 재개 뒤에도 시계는 1초에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공격, 세 번째 공격이 이어졌고, 신아람 선수는 그때마다 칼끝을 받아냈습니다.
짧은 문장으로 옮겨 봅니다. 공격. 막았다. 멈춤. 재개. 다시 공격. 또 막았다. 시계는 그대로 1초. 그리고 네 번째, 하이데만 선수의 칼끝이 신아람 선수의 어깨에 닿으면서 심판은 득점을 인정했습니다. 6대 5. 시계는 그제야 0으로 넘어갔습니다. 현장 관중이 웅성거렸고, 신아람 선수는 피스트 위에서 고개를 떨구지 않고 심판을 바라봤습니다.
이 대목에서 독자분들이 궁금해할 것은 왜 시계가 움직이지 않았느냐입니다. 당시 보도에서는 계시 장치의 오류가 지적되었지만, 정확한 원인에 대한 공식 설명은 명쾌하지 않았습니다. 규정상 1초는 경기의 마지막 순간이라도 실제 시간이 흘러야 하는 단위인데, 그 단위가 세 번의 공격 동안 멈춰 있었다는 점이 논란의 핵심이었습니다.
여기서 에페의 시간 감각을 하나 짚어 둡니다. 정규 경기는 3분씩 3라운드로 치르고 라운드 사이에 1분을 쉽니다. 3분이 통째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 멈출 때마다 시계가 서고 재개될 때 다시 가기 때문에, 화면에 보이는 숫자와 실제 흐름 사이에는 늘 심판의 손짓이 끼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1초처럼 아주 작은 단위에서는 시계 조작 하나가 곧 경기의 운명을 가릅니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1초가 너무 짧아 보이지만, 에페 선수에게 1초는 한 번의 런지가 들어가고도 남는 시간입니다.
2. 피스트에 주저앉은 시간
경기가 끝난 뒤 신아람 선수는 피스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대한펜싱협회는 곧바로 제소했고, 선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피스트 위에 앉아 기다렸습니다. 이 대기는 한 시간 안팎으로 길어졌고, 관중과 다른 나라 선수단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이 장면이 사진으로 남으면서 사건은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졌습니다. 결과를 아는 지금 보면, 판정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리를 지킨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항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하이데만 선수가 결승에 올랐고, 신아람 선수는 동메달 결정전으로 밀렸습니다.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부족했던 상태에서 치른 그 경기에서도 패해 메달 없이 대회를 마쳤습니다. 메달 색깔보다 더 무거운 것은 경기가 끝난 시점에 선수가 겪은 감정의 낙차였을 것입니다.
당시 경기장 분위기도 떠올려 봅니다. 한국 응원단은 목이 쉬도록 이름을 외쳤고, 독일 선수는 환호를 크게 하지 못한 채 어색하게 서 있었습니다. 하이데만 선수 역시 스스로 시간을 멈춘 것이 아니었으니, 이 사건에서 개인의 잘못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었고, 그래서 더 답답한 장면이었습니다. 승자에게도 축하가 온전히 닿지 못했던 드문 준결승이었습니다.
3. 그 뒤에 바뀐 것
이 사건 이후 국제펜싱연맹과 IOC 차원에서 피해를 보상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신아람 선수에게 특별상이 주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그것이 메달을 대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더 눈에 띄는 변화는 제도 쪽입니다. 이후 펜싱 경기에서 계시 장치 운용과 마지막 초 처리 방식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고, 비디오 판독 확대가 함께 거론되었습니다.
한국 펜싱은 이 사건의 상처를 딛고 성장했습니다. 이 대회에서 김지연 선수와 남자 사브르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냈고, 이후 올림픽마다 메달권을 지켰습니다. 신아람 선수 본인도 이후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다시 국제 무대에 섰습니다. 사건은 끝났지만 그 1초를 기억하는 팬이 많은 이유는, 결과보다 과정의 공정함이 스포츠의 뿌리라는 사실을 모두가 함께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독자분들이 경기를 볼 때 얻어 갈 점도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판정이 이상하다고 느끼면 그 자리에서 소리부터 지르기보다, 어떤 규정이 적용되는지 그리고 항의가 가능한 시간이 얼마인지 살펴보는 습관이 도움이 됩니다. 이 경기에서도 한국 측의 항의는 신속했지만 결론을 뒤집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규정을 아는 팬이 늘수록 다음 논란에서 선수 곁을 지킬 근거도 늘어납니다.
다시 그 피스트로 돌아가 봅니다. 전광판의 숫자 1, 흐르지 않던 시간, 그리고 끝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던 선수의 뒷모습. 저는 중계 마이크를 잡은 캐스터의 마음으로 이 장면을 되짚을 때마다 같은 결론에 이릅니다. 스포츠에서 가장 긴 순간은 종종 가장 짧은 시간 단위 안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스포랭크가 앞으로도 이런 결정적 장면을 하나씩 되살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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