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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조가 몬주익 언덕을 내려오며 56년 만에 태극기를 올렸다

오른쪽 2026. 10. 9. 01:13

결승선에서 황영조와 모리시타, 프라이가이트의 기록 차이(초)

1992년 8월 9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몬주익 주경기장에서 황영조가 2시간 13분 23초로 올림픽 남자 마라톤 금메달을 땄습니다. 손기정이 1936년 베를린에서 우승한 뒤 56년 만에 나온, 태극기를 달고 얻은 첫 마라톤 금메달이었습니다. 결승선을 끊은 순간보다 그 직전 몬주익 언덕에서 벌어진 일이 더 오래 회자됩니다. 중계석에 앉았다면 마이크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42.195km였죠. 결과를 아는 지금 그 장면을 배경, 경기 흐름, 의미 순서로 짧게 짚어 봅니다.

 

 

1. 배경 — 56년을 기다린 금메달

이 금메달의 무게는 1936년에서 시작합니다. 손기정은 그해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했지만 일장기를 달고 시상대에 올라야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황영조의 레이스가 열린 날짜도 8월 9일이었습니다. 국가기록원 자료도 이 날짜의 일치를 따로 적어 두고 있습니다.

그 사이 한국 마라톤은 세계 무대에서 늘 문턱 앞에 서 있었습니다.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서윤복이 우승하며 가능성을 보였지만, 올림픽 금메달은 끝내 닿지 않는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바르셀로나를 앞둔 한국 육상계와 국민에게 마라톤은 기록 경쟁이 아니라 숙제에 가까웠습니다.

코스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은 역대 올림픽 중 가장 어려운 코스로 꼽혔습니다. 후반부에 몬주익 언덕이 버티고 있었고, 여름 오후의 열기와 습도까지 겹쳤습니다. 황영조 본인도 훗날 30km 지점의 몬주익 언덕을 두고 달리는 차에 머리를 박고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돌아봤습니다.

당시 한국 대표팀에게 마라톤은 부담이 가장 큰 종목이기도 했습니다. 국민 기대가 큰 만큼 선수 한 명이 짊어질 압박도 컸고, 해외 전지훈련으로 고지와 더위를 미리 겪어 보는 준비가 이어졌습니다. 기록이 아니라 코스에 맞춘 훈련이었다는 점이 이 대회 준비의 특징입니다.

 

 

2. 무슨 일이 있었나 — 언덕에서 갈린 승부

레이스 중반까지는 선두 그룹이 한 덩어리로 움직였습니다. 황영조는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와 나란히 달리며 기회를 살폈습니다. 30km를 넘기자 몬주익 언덕이 나왔습니다. 오르막에서 호흡이 거칠어지는 구간이었고, 두 사람의 어깨가 여전히 붙어 있었습니다.

승부는 37km 부근에서 갈렸다고 전해집니다. 황영조가 언덕을 내려오는 구간에서 속도를 끌어올렸고, 모리시타가 따라붙지 못했습니다. 이 스퍼트가 하이라이트였습니다. 힘을 아낀 쪽이 내리막에서 튀어나간 겁니다. 초 단위로 거리가 벌어지는 장면이 화면에 그대로 잡혔습니다.

주경기장으로 먼저 들어선 것은 황영조였습니다. 기록은 2시간 13분 23초였습니다. 은메달 모리시타는 2시간 13분 45초로 22초 뒤에 들어왔고, 동메달 독일의 슈테판 프라이가이트는 2시간 14분 00초로 37초 차였습니다. 마라톤에서 22초는 트랙으로 치면 100m 안팎의 거리입니다. 그만큼 결승선 직전까지 팽팽했다는 뜻입니다.

 

  • 금메달 황영조 2시간 13분 23초
  • 은메달 모리시타 고이치 2시간 13분 45초 (22초 차)
  • 동메달 슈테판 프라이가이트 2시간 14분 00초 (37초 차)

 

레이스가 끝난 뒤 장면도 기억에 남습니다. 결승선을 통과한 황영조는 그대로 트랙에 쓰러졌고, 곧바로 의료진이 달려왔습니다. 전력을 다 쏟아낸 선수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 그대로 보여 준 순간이었습니다. 시청자는 금메달의 기쁨과 걱정을 동시에 느꼈고, 이 장면이 마라톤이라는 종목의 냉정함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기록은 공식 결과 기준이며, 국가기록원 자료 중에는 13분 29초로 적힌 곳도 있어 확인 필요로 표시해 둡니다.

한 가지 더 짚자면, 이날 경기는 오후 늦은 시간에 시작돼 한국에서는 한밤중에 중계됐습니다. 새벽까지 텔레비전 앞을 지킨 시청자가 많았고, 결승선 장면이 나오는 순간 전국이 들썩였다는 이야기가 당시 기사마다 남아 있습니다. 경기 자체의 기록과 함께 이런 시청 경험까지 기억하는 것이 스포츠 역사를 읽는 재미입니다.

 

 

3. 의미 — 기록보다 이야기가 남은 레이스

이 우승이 한국 스포츠에 남긴 것은 메달 숫자만이 아닙니다. 56년 전 일장기 아래서 뛰어야 했던 손기정의 한을 태극기와 애국가로 풀어냈다는 서사가 얹혔습니다. 당시 신문들이 이 장면을 연일 1면에 올린 이유입니다. 대한체육회가 정리한 한국 올림픽 역사에서도 이 금메달은 마라톤 계보의 한 축으로 남아 있습니다.

달라진 것도 있었습니다. 이후 한국 마라톤은 올림픽 코스 공략이라는 관점을 갖게 됐습니다. 기록이 빠른 레이스와 지형이 까다로운 레이스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몬주익이 보여 주었습니다. 지금 마라톤을 볼 때 오르막과 내리막 구간을 눈여겨보게 된 시청자가 많다면, 그 출발점 중 하나가 1992년 바르셀로나입니다.

시청자 입장에서 배울 점도 있습니다. 마라톤 중계를 볼 때 기록표만 보지 말고 구간 난도와 선수의 페이스 배분을 같이 보면 경기가 훨씬 입체적으로 읽힙니다. 몬주익의 37초 차이는 그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올림픽 경기를 중계로 다시 보고 기록까지 함께 찾아보고 싶다면 올림픽 중계 플랫폼 추천과 기록 모음해 보세요. 다음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가 언덕 위에서 어떤 승부를 걸지 지켜볼 일입니다.

참고한 공식 자료는 국가기록원의 마라톤 기록물 소개, 대한체육회 공식 사이트, 국가기록원 누리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