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8년 10월 20일, 멕시코시티 올림픽 스타디움. 높이뛰기 결선에 선 딕 포스베리가 몸을 활처럼 뒤로 젖히며 바를 등으로 넘었습니다. 그때까지 지구상 어떤 선수도 이렇게 뛴 적이 없었습니다. 매트에 등부터 떨어지는 자세, 지금 보면 당연하지만 그날 관중석은 술렁였습니다. 포스베리는 이 낯선 자세로 2.24미터를 넘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그 순간부터 높이뛰기라는 종목의 문법이 다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왜 다들 가위뛰기와 벨리롤만 쓰고 있었나
1960년대 높이뛰기의 표준은 두 가지였습니다. 다리를 벌려 정면으로 바를 타 넘는 가위뛰기, 그리고 몸을 배 쪽으로 굴리며 넘는 벨리롤(스트래들). 두 기술 다 선수가 바를 마주 보거나 옆으로 보며 넘는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포스베리도 고등학교 시절엔 가위뛰기로 시작한 평범한 점프 선수였습니다. 문제는 기록이 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리건주립대에 진학한 뒤에도 코치들은 그의 자세를 두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도움닫기 각도를 곡선으로 바꾸고, 바를 마주 보는 대신 등으로 넘는 방식을 혼자 반복하며 다듬어 나간 것입니다. 누가 가르쳐준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몸이 바를 넘는 순간의 물리를 본인 감각으로 재구성한 결과였습니다. 당시 육상 전문가들 눈에는 정석을 벗어난 자세, 심하게는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비쳤습니다. 현지 언론이 그를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높이뛰기 선수’라고 놀리듯 부르다가, 이 자세가 결국 ‘포스베리 플롭’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이 자세가 가능해진 데는 기술적인 배경도 있습니다. 1960년대 들어 착지 매트가 기존 톱밥·모래에서 두꺼운 폼 매트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등이나 목부터 떨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을 환경이 갖춰진 시점과, 포스베리가 이 자세를 다듬던 시기가 겹칩니다. 안전한 착지 매트가 없었다면 애초에 시도조차 어려웠을 기술입니다.
사실 첫 반응이 다 호의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등부터 착지하는 자세가 목이나 척추에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육상 관계자들 사이에서 실제로 나왔습니다. 일부 지도자는 이 기술을 후배들에게 권하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두꺼운 폼 매트가 표준 장비로 자리 잡으면서 이런 우려는 빠르게 잦아들었고, 안전성 논란은 결국 기록이라는 결과 앞에서 힘을 잃었습니다.
결선, 세 번의 도움닫기
결선 당일 날씨는 쾌청했습니다. 해발 2,240미터에 이르는 멕시코시티의 고지대 공기는 공기 저항이 적어 단거리·점프 종목에서 유리하다는 분석이 많았던 대회였습니다. 실제로 이 대회에서는 높이뛰기뿐 아니라 멀리뛰기, 단거리 종목에서도 세계기록급 결과가 여럿 나왔습니다.
2.20미터까지 포스베리는 무난하게 통과했습니다. 다음 높이 2.22미터에서도 첫 시도에 성공하며 분위기를 이어갔습니다. 진짜 승부는 2.24미터, 개인 최고 기록에 해당하는 높이에서 갈렸습니다.
첫 번째 시도, 바를 건드려 떨어뜨렸습니다. 두 번째 시도, 역시 실패. 남은 기회는 단 한 번. 포스베리는 특유의 J자 곡선 도움닫기로 속도를 붙이고, 몸을 뒤로 젖히며 등으로 바를 스치듯 넘었습니다. 매트에 떨어지는 순간 스타디움이 터졌습니다. 올림픽 신기록이자 자신의 개인 최고 기록이었습니다. 중계석에서 이 장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이게 훗날 교과서가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장면이었습니다.
이후 높이뛰기는 이 자세로 뒤덮였습니다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왔습니다. 4년 뒤 1972년 뮌헨 올림픽, 높이뛰기 결선에 오른 40명 가운데 28명이 이미 포스베리와 같은 자세로 바를 넘고 있었습니다. 1980년에는 결선 16명 중 13명이 이 기술을 썼고, 1972년부터 2000년 사이 올림픽 메달을 딴 36명 가운데 34명이 같은 자세였습니다.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소수의 이색 기술이 압도적 표준이 됐다는 뜻입니다. 지금 텔레비전으로 육상 경기를 보면 선수 전원이 등으로 바를 넘습니다. 그 장면의 출발점이 1968년 멕시코시티, 아무도 예상 못 한 한 선수의 세 번째 도움닫기였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지금 남자 높이뛰기 세계기록은 1993년 하비에르 소토마요르가 세운 2.45미터입니다. 이 기록 역시 당연히 포스베리 플롭 자세로 나왔습니다. 포스베리가 1968년에 넘었던 2.24미터보다 21센티미터나 더 높습니다. 자세 자체는 그대로인데, 선수들의 체격과 훈련 방식이 발전하면서 같은 기술로 도달할 수 있는 높이가 한 세대 만에 크게 늘어난 셈입니다. 결과를 알고 지금 이 장면을 돌이켜보면, 1968년 그날은 단순히 금메달 하나가 걸린 결선이 아니라 이후 반세기 동안 이어질 기록 행진의 출발선이었던 것입니다.
- 넘은 높이: 2.24m, 올림픽 신기록
- 성공한 시도: 마지막 세 번째 시도
- 4년 뒤 뮌헨 올림픽 결선: 40명 중 28명이 같은 자세 사용
- 1972~2000년 올림픽 메달리스트: 36명 중 34명이 같은 자세 사용
포스베리는 그날 금메달 하나가 아니라, 높이뛰기가 뛰는 법 자체를 바꿔 놓고 스타디움을 떠났습니다. 지금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아이들이 매트 위로 등부터 뛰어넘는 그 흔한 동작조차, 시작은 1968년 멕시코시티의 그 세 번째 도움닫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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